나에게, 주님, 주님, 하고
말하는 자마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시는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자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저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들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였으니, 불법을 이루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이 구절을 누가복음 13:25-30과 비교하라. 슬프고, 슬픈 사실은 하늘에 간다고
기대하는 많은 이들이 실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이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들의 도덕, 선행을 의존하고,
침례나 교회 회원, 심지어 감정을 의존하여, 그 결과 지옥에 갈 것이다. 이 말씀이
거짓 대언자에 관한 가르침 뒤에 온다는 사실을 주지하라. 많은 사람들이 거짓
대언자를 따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다양한 의식(儀式)과 전례(典禮),
선한 행위, 등으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설교자들은 불멸하는 혼의 운명을
다루므로 반드시 잘못 인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떤 이가 사함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고 죄사함을 받아 그의 마음이 변화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가장 덕이 있는 여자와 가장 도덕적인 남자도 그가 거듭나지 않으면,
고통 중에 눈을 뜰 것이며, 아마 놀랄 것이며, 영원한 정죄를 받을 것이다(요 3:3,5,7,18,36).
신중하게 23절을 주지하라. "내가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였으니(I NEVER knew you)". 예수님은 한 번 구원을 받은 후에 타락한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아니다. 구원에 관해서 자신의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기름을 가지지 않았던 어리석은 다섯 처녀에 대한 슬픈 경고를 주지하라.
기름은 성령으로 태어난 존재라는 것과 모든 그리스도인들 같이 자기 안에 살아
계신 성령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마
25:1-13; 롬 8:9). 22절은 많은 설교자들이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행위로 말미암은 구원과 교회의 구원을
가르치는 많은 카톨릭 사제들과 설교자들은 어찌 될것인가? 22절이 말하듯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분명히 기적을 행했던 유다를 기억하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조심하여 자신의 구원을 확인하자. 히브리서
4:1,2,11, 베드로후서 1:10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라.
요한복음 3:16,18; 사도행전 16:31; 로마서
10:9,10의 약속을 요구하라.
바위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움(24-29)
여기서 예수님은 앞의 13-23절의 가르침을 강화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으나 결코 복음에 대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나의
말을 행하는"이란 구절은 사람들이 때로 구원을
받기를 소망하며 행하는 일상적인 선한 행위를 가리키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은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말씀하신다(요 6:29).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의 죄로부터 돌아서서, 복음에 순종한다(롬 10:16). 24절에 언급된
지혜로운 자의 선한 행위는 "자기
집을 바위 위에 건축한" 것이다. 바위는 그리스도다.
지혜로운 사람은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의존하며 그분을 의지한다.
이 구절의 "지혜로운 사람"과 마태복음 25:4의 "지혜로운
처녀들"을 비교하라.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원이다"(잠 9:10). 바위는 그리스도시다. "이 놓인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나니, 이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시라"(고전 3:11). "그 바위는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또한 이사야서
28:16; 마태복음 16:18; 베드로전서 2:6-8을 보라. 다음의
노래는 정확히 이 사실을 노래한다.
견고한 바위이신 그리스도 위에, 내가 서있네, 다른 모든 기초는 내려앉는 모래라네.
당신의 집은 그리스도이신 바위 위에 세워졌는가? 그렇다면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영원히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기뻐하라. (John R. Rice)
영적인 열매로 앎(마 7:15-23)
"거짓 대언자"는
거짓 복음을 선포하는 거짓 선포자만을 의미하지 않고 주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거짓 고백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의 내적 본성은 바뀐 적이 없다(벧후 1:4를 볼 것). 그들은 다만 외적으로
양의 옷을 입었을 뿐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고 심지어 종교적 행위도
하지만, 구원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거짓 믿는이들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16절). 그리스도께서 어떤 열매를 찾으시는가? 그분은 다음과 같은
열매를 찾으신다. (1) 산상수훈과 갈라디아서
5:22-23에 기술된 성령의 열매 또는 그리스도인의 특성,
(2) 하나님께 대한 증거와 찬양인 입술의 열매(히
13:15), (3) 거룩한 삶(롬
6:22), (4) 선행(골
1:0), (5) 잃어버린 혼들을 그리스도께로 구령함(롬 1:13).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자도 종교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구원받은 것처럼 행할 수 있으나,
만약 그들이 진지하게 거듭났다면, 일상의 삶에서 이러한 열매들을 나타낼 것이다.
이러한 "가짜 그리스도인들"은 심판 때 놀란다는 사실을 주지하라! 자신을 속이는 것은 가능하다!
사탄은 마음을 눈멀게 하며(고후 4:3-4),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구원받은 것처럼 생각하게끔 속인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 그리스도인이라고 신앙 고백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결코 구원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놀랄 것이다!
참된 기초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행함(24-29)
두 명의 건축자는 이생에 있는 두 사람을 대표한다. 그들은 동일한 재료와 동일한
계획을 사용하였고, 세상은 이 두 집의 차이를 모른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면 - 시험의 때 - 바위에 기초를 두지 않은 집은 부딪치며 무너진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바위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기초를 둔 자이다(고전 3:11). 의(義)는 교회, 신조,
선한 삶에 기초를 두지 않고, 오직 믿는이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를 둔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들을 시험하는 폭풍을 통과하여 남아 있느냐에
의해 입증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 입증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단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오, 행하는 자이다(약
1:22-25).
성경을 잘 검토하여 거짓 믿는이들이 시험의 때에 항상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주목하라. 이스라엘 안에 여러 종족의 무리들은 여정(旅程)에서 매사가 어려워지자
이집트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바울이 어려울 때 로마에 있는 소위 그리스도인들
중에 많은 이들이 그를 저버렸다(딤후
4:9-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믿는이들이 어떻게
시험을 견디었는지를 주목하라.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베드로, 바울과 다른 많은 이들이 폭풍 속을 견디어 냄으로 믿음의 실제를
입증했다. 그들은 바위 위에 세워졌다. (워렌 위어스비)
Ⅱ. 구원을 받을 자가 많은가
소수인가
그분께서 도시들과 마을들을
지나가시는 중에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하시더라. 23 그 때 한 사람이 말씀드리되,
주님, 구원받을 자가 적으니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주인이 한 번 일어나 문을 닫으면,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말씀드리기를, 주님, 주님, 저희에게 열어 주소서, 하여도, 그가 대답하여
말하되, 나는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님께서는 저희의 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할 것이나, 27 그가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는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너희 모든 불법의 일꾼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대언자는 하나님의 왕국에 있고 너희 자신은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왕국에 앉으리니 30 보라, 나중된 자로서 먼저되고, 먼저된 자로서 나중될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더라.(눅 13:22-30)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하시며 그 길의 많은 도시들과 마을들을 지나가시는
중에 가르치고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7:1에는 다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한가운데로 지나가시게 된지라." 19장에서 예수님께서 예리고에 오시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것이다.
겨자씨와 뜸씨의 비유와 관련한 매우 중요한 질문이 23절에 주어진다. 예수님께서
과연 극히 소수만이 구원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배척하고 지옥에 갈
것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셨는가? 예수님께서 뜸씨가 복음 메시지 안으로
들어가 복음을 왜곡시킬 것이며, 교회 안으로 들어가 단순히 믿는이로 하여금
밖으로 나가서 구령을 하게 하는 대신 사리적인 세상 조직으로 만들 것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셨는가?
여기서 예수님은 단지 소수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엄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왕국에 들어가려 하지 않으며, 구원의 문을 통과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24절에서 하늘로 가는 길은 좁은(strait) 문, 곧 비좁은(narrow)
문이다. 이것은 마태복음 7:13-14과 동일한 가르침이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파멸에 이르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드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그 길이 비좁아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마 7:13,14). 지옥에 이르는
길은 넓고, 하늘에 이르는 길은 좁다. 그리스도 그분만이 유일한 문이시다(요 14:6).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양들의 문이라"(요 10:7).
그리고 여기 25절에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21-23에서 주신 가르침과 동일한
가르침이 다른 말로 주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언을 했고,
마귀를 쫓아냈으며, 놀라운 일들을 행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였으니, 불법을 이루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고
공언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께서 거리에서
가르치셨고 그들과 함께 같은 상(床)에서 먹고 마신 것을 기억하지만, 그들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거나 도덕적인 삶을 살거나, 종교나 도덕이나
교회 회원이나 교회 의식(儀式)에 관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바를 주장하지만,
결코 직접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은 적이 없으며, 그 결과 거듭나지 못했던가!
"구원받은 자가 적으니이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께서는 선행이나 교회
회원이나 도덕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주장하거나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씀하신다.
28-30 절은 유대인
가운데 종교지도자들 - 대성직자와 바리새인들 - 과 특별히 관련이 있다. 그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육신적인 상속자이였으며 대언자들의 영적 상속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쫓겨날 것이며(28절),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올 것이다. 먼저 복음을 들었던 많은 유대인들은 버려질
것이다. 이것은 로마서 11장과 동일한 가르침이다. 참 이스라엘 나무의 몇몇
가지들은 부러졌다. 많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구주(救主)에게로
오지 않으며, 구원을 받지 못했으며, 믿는 이방인들은 나무에 접붙여져서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된다. 야생 올리브 가지인 이방인들은 접붙여졌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이 충만하게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눈멀게 되기" 때문이다(롬 11:25). 로마서
4:13에는 "그가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그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나 그의 씨에게나,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로마서 2:28,29은 "겉으로
유다인이 유다인이 아니요, 겉으로 육체에 하는 할례가 그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속으로 유다인이 유다인이요,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하니라. 그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라고 말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나중된 자로서
먼저되고 먼저된 자로서 나중될 자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신다. 복음은 "먼저 유대인에게"
왔지만 지금은 유대인보다 이방인들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믿는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따랐어야 할 바로 그 바리새인들과 대성직자들은 따르지
않았으며, 그 결과 의심할 바 없이 쫓겨났다. ( 죤 R. 라이스)
우리의 구원이 인격적인가 공론적인가
- 눅 13:22-30 -
예수님께서 다시 추상적인 질문을 받으시자 그 질문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다루신다. 그 질문은 "구원받는 자가 적습니까?"가 아니라, "너희가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 있겠는가?"이다. 단어 "힘쓰다(strive)"는 "운동선수와 같이 악전고투하다"를 뜻한다. 이는 우리가 힘든 행위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것은 혼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태도, 곧 안일에 빠져있고 자기
우월성에 만족해하는 공론적인 태도에 대하여 경고한다. 만약 우리가 진지하게
구원을 얻는데 실패할 경우, 구원의 문이 닫혀 있는 것과 잔치에서 누군가가
우리 자리를 차지한 것을 보게될지도 모른다. 바리새인과 같이 자신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자는 자신이 '나중'임을 발견할 것이고, 반면에 겸손하게 자신이 '나중'이라고
생각하는 자(죄인)는 자신이 '먼저'인 것을 발견할 것이다.
(워렌 위어스비의 [Expository Outlines On The New Testament]에서)(99.7.28
역)